
회사에 처음 입사했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위장이 살짝 조여드는 기분입니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볼까 망설이던 그 순간요. 영화 패신저스를 보면서 그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짐이 광활한 우주선 안에서 홀로 버티는 장면들이, 낯선 조직 안에서 조용히 녹아들려 애쓰던 제 모습과 묘하게 겹쳤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선택의 윤리
패신저스는 5,000명의 승객을 태운 우주선 아발론 5가 식민 행성으로 향하는 90년 항해 중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갈등은 단순합니다. 승객 짐이 동면 상태에서 90년 일찍 깨어난 뒤, 극한의 고독 속에서 오로라의 동면기를 강제로 열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동면은 신체 대사를 극도로 낮춰 노화와 의식을 정지시키는 기술로, SF 장르에서 장거리 우주 항행의 핵심 설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살아있는 채로 수십 년을 건너뛰는 기술인데, 이것이 고장 났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모든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짐의 선택을 보면서 저는 단순히 나쁜 짓이라고 단정 짓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직접 그 상황에 놓였다면 어땠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봤기 때문입니다. 입사 초반, 저 역시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혼자 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구한 건 먼저 말을 걸어준 선배 한 명이었는데, 짐에게는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이런 상태를 사회적 고립이라고 하는데 사회적 고립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된 상태를 말하며, 장기화될 경우 인지 기능 저하와 충동 조절 능력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짐의 행동은 그래서 이해 가능하지만,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 곧 정당화는 아닙니다. 오로라의 분노와 배신감은 그 자체로 완전히 타당합니다. 저는 이 긴장 관계가 영화의 가장 솔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이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위기가 닥치고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서 갈등이 너무 빠르게 봉합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 경험상 한번 무너진 신뢰는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같은 팀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프로젝트를 함께 완수했다고 해서 감정이 바로 정리되지는 않았으니까요.
위기 극복과 인간관계의 구조
영화의 후반부는 우주선 원자로 결함이라는 물리적 위기로 무게중심이 옮겨집니다. 여기서 원자로란 핵분열 반응을 통해 우주선의 추진력과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이것이 오작동하면 우주선 전체가 폭발로 이어질 수 있으니, 사실상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가 됩니다. 짐이 원자로 수동 수리를 시도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 높은 시퀀스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저의 첫 번째 큰 업무 실수가 떠올랐습니다. 혼자 처리하려다 일을 키웠고, 결국 팀장에게 털어놓고 같이 수습하면서 오히려 관계가 단단해졌던 그 경험이요. 짐도 결국 혼자서는 끝내지 못했고, 오로라가 없었다면 살아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짐과 오로라가 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의존하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그 심리적 안전감이 극한 상황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말에서 88년 뒤 사람들이 깨어났을 때 우주선 안이 동식물로 가득 찬 생태계가 되어 있는 장면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두 사람이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는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낸 결과니까요. 제가 입사 초기에 낯선 환경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불만을 안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작은 것부터 직접 만들어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고, 모르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보면서요. 패신저스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갈등의 해소 방식이 다소 편의적이고, 짐의 선택에 대한 윤리적 심문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로움이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영화로서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은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혼자 지는 것보다 함께 지는 쪽이 훨씬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 우주선 아발론 5의 두 사람이 그걸 88년에 걸쳐 증명했습니다. 패신저스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한 번쯤 짐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가 훨씬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