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개봉 이후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23년간 지켰던 작품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봤을 때, 단순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라고만 생각했던 과거의 저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표면 아래에 이렇게 많은 것이 숨어 있는 작품이었다니요.
이름을 빼앗긴다는 것의 의미 정체성과 욕망의 심층 구조
이 영화의 핵심 장치는 이름 박탈입니다. 마녀 유바바는 치히로와 노동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합니다. 여기서 '센'이란 한자로 천(千), 즉 천 명 중 하나라는 뜻으로, 개성을 지운 채 노동력으로만 존재하게 만드는 기제입니다. 쉽게 말해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 소품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한때 게임과 스마트폰에 깊이 빠져 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저도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부도, 가족과의 대화도, 운동도 뒤로 밀린 채 게임 속 캐릭터의 레벨과 아이템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요. 치히로가 센으로 불리면서 점점 자신의 이름을 잊어가는 것처럼, 저 역시 일상의 중요한 것들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비판하는 욕망의 구조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치히로의 부모님이 허락 없이 음식을 먹다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탐식, 즉 절제 없는 소비 욕망의 은유입니다. 탐식이란 단순히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까지 무한정 가지려는 욕구를 가리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장면 하나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에 압도된 어른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가오나시 캐릭터는 이 욕망의 구조를 더욱 정밀하게 해부합니다. 가오나시는 공허함을 핵심 속성으로 갖는 캐릭터입니다. 공허함이란 내면이 채워지지 않아 끊임없이 외부의 무언가를 갈망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가오나시는 금을 뿌리고 음식을 삼키면서 점점 거대해지지만, 센의 경단 하나에 그 모든 것을 토해내고 본래의 작은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이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오물신 에피소드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악취를 풍기며 나타난 슈퍼 오물신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였고, 쓰레기가 제거되자 그 안에서 아름다운 강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깨끗한 물, 공기, 식량 등의 혜택을 인간의 오염 행위가 이를 훼손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치히로가 성장한 방식 경험과 기억이 만드는 자아
치히로의 성장 방식은 흔히 말하는 강해지는 것과 다릅니다. 그녀는 싸움을 잘하게 되거나 마법을 익히거나 특별한 능력을 얻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성장이란 자기 안에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솔직히 이건 처음 봤을 때는 좀 특이하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성장 서사는 주인공이 뭔가를 획득하는 구조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게 더 현실에 가깝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저 자신이 달라지게 된 계기는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독서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어색하고 지루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 저였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치히로가 낯선 세계에서 하쿠의 본명을 기억해 내고,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줬던 강의 기억을 되찾는 것처럼요. 하쿠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순간 저주가 풀리는 장면은 이 개념을 아주 감각적으로 시각화한 장면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곧 관계를 회복하고 정체성을 되찾는 행위라는 것이죠. 영화 마지막에 치히로가 돼지 무리 속에서 부모님을 찾아내지 못하는 장면도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해진 정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믿는 것, 그것이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이란 개념과 닿아 있습니다. 치히로는 이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것을 단단히 키웠습니다. 치히로가 수십 년간 전 세계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조용히 말을 걸기 때문입니다. 터널을 나온 치히로의 손목에는 여전히 머리띠가 남아 있습니다. 이계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잊은 듯 보이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겪은 경험은 의식에서 사라져도 사람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이 디테일 하나가 전달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다시 확인해 봤을 때, 왜 수백만 명이 이 결말에서 울었는지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결국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를 기억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치히로가 그랬듯이, 우리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꺼내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처음 보신다면 이야기 자체를 즐기시고, 다시 보신다면 각 캐릭터가 상징하는 것들에 집중해 보시길 권합니다.